봉준호 감독의 시선 <옥자> 현대사회, 풍자, 비판

영화 옥자 포스터 사진

영화 '옥자'는 단순히 감성적인 동물 이야기가 아닙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 소비주의, 환경문제, 인간성과 같은 복잡한 주제를 날카롭게 들여다봅니다. 특히 현대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동화적 판타지와 현실적인 묘사를 조화롭게 녹여내며, 관객에게 깊은 사유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현대사회', '풍자', '비판'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봉준호 감독의 시선이 담긴 영화 '옥자'를 다각도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시선 <옥자>을 통한 현실 사회

‘옥자’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핵심 문제를 선명하게 조명하는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얼마나 생산성과 효율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지, 그리고 그 시선에서 벗어난 존재들은 어떻게 소외되고 배제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란도 코퍼레이션이 개발한 ‘슈퍼돼지’ 프로젝트는 단지 많은 식량을 생산하려는 경제 전략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본질은 동물을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영화 속 미자는 오직 하나의 생명체 ‘옥자’를 가족처럼 사랑하고 아낍니다. 하지만 미란도 코퍼레이션은 옥자를 수십 마리 중 하나로 취급하며, 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생명체를 조작하고 상품화합니다. 이 과정은 축산업과 대형 식품회사들이 실제로 운영되는 방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은 점차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있으며, 영화는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옥자’는 도시와 자연, 인간과 동물, 이윤과 윤리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제품의 생산과정에는 무관심하고, 그저 결과물만 소비합니다. 옥자가 실험되고 고통받는 장면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고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우리가 소비하는 것의 이면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이 외에도 영화는 현대인의 무감각함, 윤리의 실종, 환경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중첩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마트의 진열대에 고기가 놓이기까지의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사는 우리의 현실을 상기시키며,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로 현대사회의 ‘선택적 무지’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유쾌하지만 뼈 있는 장면들을 통한 풍자

봉준호 감독은 ‘옥자’에서도 특유의 유머와 풍자적 연출을 절묘하게 녹여냈습니다. 특히 사회적 모순과 인물의 이중성을 캐릭터와 장면에 녹여내어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동시에 통렬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루시 미란도입니다.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이 인물은 자칭 ‘윤리적인 기업가’지만, 실상은 거대한 기업의 탐욕을 부드럽게 포장한 인물에 불과합니다. 루시의 과장된 언행, 깔끔한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끊임없는 ‘착한 척’은 오늘날 실제 다국적 기업들이 지속가능성과 윤리를 표방하며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 수법을 연상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동물해방전선(ALF)을 통해 이상주의자들의 위선과 한계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의롭고 용감한 단체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의견충돌, 판단착오, 과장된 행동들이 반복되며 웃음을 자아냅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들을 단순히 '착한 편'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이들 역시 현실 속에서 자기모순과 무력함을 드러내며, 이상주의가 얼마나 현실과 부딪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옥자와 미자가 백화점에서 벌이는 추격신, 낙하 사고, 혼란스러운 카메라 워크 등은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인간의 이기적인 태도, 감정과 이성의 괴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러한 풍자적 장면들을 단순한 웃음 코드로 끝내지 않고, 관객이 ‘왜 웃고 있는가’를 곱씹게 만듭니다. 이처럼 영화는 웃기지만 결코 가볍지 않으며, 모든 유머 뒤에는 날카로운 비판이 숨어 있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구조적 질문을 통한 비판

‘옥자’가 진정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감동이나 메시지 전달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선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바뀌지 않는 세상의 구조를 드러냅니다. 미자가 옥자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녀가 상대하는 것은 거대 기업이라는 '시스템'입니다. 그 안에서 한 명의 소녀는 절대적으로 무력한 존재입니다. 영화 후반부, 도살장의 장면은 이러한 시스템의 잔혹함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수많은 슈퍼돼지들이 차례로 죽음을 기다리는 공간에서, 미자는 옥자 하나만을 간신히 구해냅니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제한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메타포입니다. 미자의 금돼지를 내밀며 옥자를 ‘구매’하는 장면은, 결국 이 세계가 ‘돈’이라는 기준으로 움직인다는 냉혹한 진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는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서도 비판적입니다. 기업의 발표와 마케팅, 뉴스 보도 등은 실체를 왜곡하며,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믿습니다. 대중은 보이는 것만을 신뢰하며, 우리가 보는 것은 겉모습일 뿐, 그 이면에 감춰진 현실은 좀처럼 보려 하지 않습니다. 이 같은 현실을 영화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쇼 같은 행사, 기자들의 반응, SNS에 휩쓸리는 시민들의 모습을 통해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통해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구조 속에서 진정한 윤리, 정의, 생명의 존엄이 어떻게 희생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감정적 비극이 아니라, 구조적 모순에 대한 통렬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